남부저널

N번의 벤젠

해양경찰이 함정을 지키는 일 말고도 녹을 벗기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까지 직접 해왔다는 것을,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몰랐습니다. 지금은 선박 정비의 상당 부분을 외부 용역에 맡기고 있다지만, 박 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확진받은 2018년까지 4개 함정을 옮겨 다니며 이 일을 도맡았습니다.

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대물림되거나 가족력과 관련된 병이 아닙니다. 후천적 유전자 변이가 원인으로 꼽힐 뿐입니다. 유해물질 노출 사업장은 그나마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습니다. 함정이 유해물질 노출 현장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습니다.

박 씨는 2018년 N번째 백혈병 환자가 됐습니다. 남부저널은 그가 왜 N번째가 됐으며, 그간 무엇과 싸웠는지 추적했습니다. 창간 첫 보도, ‘N번의 벤젠’을 시작합니다.


  • ①법륜스님이 나를 살렸다

    ①법륜스님이 나를 살렸다

    같은 날 제주대학교병원 응급실로 갔다. 아니길 바랐지만 결과는 같았다. 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은 나왔지만, 만성인지 급성인지는 그곳에서 가늠할 수 없었다. 제주도 내 최대 규모 병원이지만 그 이상의 정밀검사가 안 되는 것이었다. 당장이라도 자신의 운명을 확인하고 싶었지만 그날 확인한 건 제주도가 바다에 가로막힌 섬이라는 사실이었다. 피가 마르고 속이 탔다. 

  • ②인사혁신처는 해경에 벤젠 노출을  입증하라고 했다

    ②인사혁신처는 해경에 벤젠 노출을 입증하라고 했다

    함정에서 페인트칠과 정비 업무를 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해양경찰관 박 씨. 벤젠 노출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요양을 인정받지 못했지만, 2심 재판부는 기관의 자료 부존재를 박 씨에게 불리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.

  • ③ 해경 박 씨는 N번째 발병자였다

    ③ 해경 박 씨는 N번째 발병자였다

    해경은 박 씨가 무엇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보여줄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았다. 그런데 인사혁신처와 1심 법원은 입증책임 분배원칙에 따라 상병과의 인과를 증명한 객관적 자료를 요구했다. 1심에서 패소한 그는 전국을 돌며 스스로 증거를 만들었다.

  • ④박씨는 이겼지만 구조는 그대로

    ④박씨는 이겼지만 구조는 그대로

    확정됐다. 인사혁신처 소송 담당자는 “법률적 쟁점이 없어 2심 판단을 받아들인 것”이라면서도 결과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. 승소의 열쇠는 인사혁신처가 2023년 개정한 예규였다. 백혈병 등 직업성 암 판정 기준이던 벤젠 노출 0.5피피엠(ppm) 수치를 이미 삭제해 놓았던 것이다. 왜 인사혁신처는 상고를 포기했을까. 왜 재해 인정은 받기가 힘들까.